1980년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5·18을 김대중 체포와 지역차별에 분노한 호남민들의 집단폭동으로 보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이라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5·18기념재단은 19일 5·18 관련 해외자료 수집과 분석 사업의 일환으로 5·18 당시 미국의 언론매체들의 보도동향을 분석한 최용주 재단 비상임 연구원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5월18일부터 6월 말까지 한 달 여 동안 미국의 언론매체들은 약 250여건의 광주항쟁 관련 기사를 생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연구원은 이 중 미국 주류언론의 양대 매체인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와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최대 통신사인 AP(Associated Press), 대표적 시사잡지인 뉴스위크(News Week)와 타임(Time)지에 실린 190건의 기사를 분석했다.

당시 미국매체들은 광주항쟁이 발발하게 된 한국 고유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이해보다는 자국인 미국의 관점, 카터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한(對韓) 정책의 관점에 의존해 보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카터 행정부는 안보를 명분으로 전두환 신군부를 군사적, 외교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광주항쟁을 정치발전과 인권 신장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지역차별과 지역의 정치영웅인 김대중의 체포에 불만을 품은 광주시민들이 일으킨 '국지적' 폭동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보고서는 미 정부의 경향에 따라 언론 보도 역시 이러한 관점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보도경향은 광주항쟁과 성격과 비슷한 19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에 대한 미 언론의 보도행태와 비교하면 더욱 잘 드러난다.

천안문사태 관련 기사는 사태의 정치적 성격을 보여주는 개념인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가 빈도 수에서 6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게 다뤄졌다.

하지만 광주항쟁 관련 기사 190개 기사 총 3만3840개 단어 중 민주주의 단어는 42회에 불과했다.

최 연구원은 "이 같은 차이는 당시 미국 매체가 카터 행정부의 대한정책 기조에 의존해 광주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을 주저한 탓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광주항쟁 이후 미국 언론이 가장 염려한 부분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책임론과 이로 인한 '반미주의'의 확산이었다"며 "대부분 매체가 반미주의의 확산에 대비하는 미국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미국 매체들은 광주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공수부대의 유혈진압에 있음을 명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 연구원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적극적으로 왜곡 선전하던 북한 개입설을 일축하는 등 '사실'에 근거해 취재하는 노력을 많이 보여줬다"며 "광주항쟁 이후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정균주 기자 dbskj@hanmail.net        사회부 정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