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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목)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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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보자기
2023. 11.17(금) 09:20

공서화 부국장
한여름 소나기가 막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은 아직은 햇빛이 후덥지근함을 더한 듯 하다.
일곱 살 정자는 마당 한가운데서, 흙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큰딸인데도 도시의 부모님을 떠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자는 엄마 아빠가 마음속으로는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운할까 봐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정자야 할머니 장에 갔다 올란께 잘 놀고 있어 잉~”
심심하면, 옆집 꺼꾸리랑 놀고 있어라. 올때 눈깔사탕 사올께 잉~!
정자는 시골 산골 먹을것이 천지여도 사탕은 장에 가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달콤함은
꾸지뽕, 단감, 대봉, 밤, 대추등 달콤한 것들이 많았지만, 장에 가야만 사 올 수 있는 사탕만큼 달콤하지는 않았다.
“응 할머니 빨리 와 잉~”

정자는 할머니가 나가시기 무섭게, 옆집 거꾸리를 불렀다.
“꺼꿀아~ 우리 빠끔살이 할까?”
“글믄 우리 집으로 와서 놀자, 우리 아부지가, 불 때라고 했어!”
정자는 바로 옆집이라 바당 옆 뒷문으로 휙 돌아서 꺼꾸리 집으로 갔다.
거꾸리는 후덥지근한 외양간에서 쇠죽을 쓰는지 큰 솥에 야채 를 넣고 불을 때고 있었다.
거꾸리는 낳을 때 거꾸로 나와서 거꾸리 였다. 정자보다 한두 살 위인 남자아이였는데, 약간 부족해서 학교에도 못 갔다.
부모님은 남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먹고 살았기 때문에 집안일은 시키는 대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착실히 했다.
정자도 한참을 부지깽이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궁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뚜껑을 몇 번을 열고 쇠죽을 뒤집은 뒤에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솥을 닫고는
“이제 다됐다!’ 우리 머하고 놀까?”하고 정자를 쳐다보았다.
“빠끔살이 한다 했잖아~~~!”
“그랬구나, 히히~~”
웃는 얼굴이 꼭 바보 같아서 정자는 ‘에휴! 내가 저런 바보하고 놀아야돼?’
하면서도 딱히 무엇을 하고 놀 것도 이야기할 상대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같이 놀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웠던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시원해졌다.
담 넘어 먼 산이 아름다웠다.
꺼꾸리는, 집 한쪽 자리에 놀기 좋게 거적도 씌워서 아지트같이 생긴 자리를 만들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어린 정자는 땅따먹기나 하고 호박 널기 심부름을 하면서 자연 속에서 혼자 놀았다.
거꾸리는 정자가 부르면 바보 같은 웃음으로, 달려오곤 했다. 한두 살 위였지만,
정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였다.

“어메, 먼 비가 요로케 온다냐? 울 할머니 장에 가셨는디.......”
‘이건 금방 그쳐! 소나기여!’ 거꾸리는 히죽 웃었다.
일곱 살 정자는, 그런 거꾸리가 다른 때는 만만한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치 오빠 같다는 생각 을 했다.
아마도 막 남자 여자라는 그런 생각을 할 즈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이서 오누이처럼, 앉아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보고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마당에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저거시 머시다냐? 하늘에서 작은 용이 떨어진 것 이여?”
후다닥 나가서 자세히 보니, 미꾸라지가 떨어져 꿈틀대고 있었다.
“어메! 미꾸라지가 떨어졌네! 하늘에도 또 냇가가 있다냐?”
“왜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 진데?”
“나도 몰러? 이상하네!”
둘은 비를 맞으며 팔딱거리는 미꾸라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사이 소나기는 그치고 무지개가 저 멀리 개울 옆에 떴다.
둘이 무지개를 보고 와~~ 무지개가 떴다 하고 좋아했다.
정자는 산 넘어로 해가 떨어지면 사탕이 곧 온다는 생각에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돌아오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한테 혼나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마루에서 토방 쪽으로 발을 까닥거리면서 앉아있는데, 큰 키에 장승 같은 노인이 연장을 들고 터벅터벅 들어왔고, 그 뒤로 수건으로 목을 두른 삼촌들이 들어왔다. 시골 사람의 고단한 하루의 모습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잘 놀았냐? 꾸지뽕이랑 얼음 따왔다. 먹어라!”
“느그 할매는 아직 장에서 안 왔냐?”
“응!”
“언능 밥 앉혀라잉!”
할아버지는 쩌렁쩌렁 목소리로 삼촌들에게 말했다. 막내 삼촌은 순식간에
밥을 앉혔다.
뜸이 들어갈 때쯤, 사립문 앞으로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탁탁 털면서 들어왔다.
정자는 후다닥 뛰어서, 할머니에게로 가서 말했다.

“할머니 오다마 사왔어?”
“여기있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는 알사탕은 우리는 “오다마”라고 불렀다.

“할머니 오늘 하늘에서 비오는데, 미꾸라지가 떨어 졌당께?”
“지랄!, 먼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떨어져야..... 집옆 개울가에서 미꾸라지가 타고 올라가다가
마당으로 떨어진 거것제!” 집 옆에 물이 조금 흐르는 개울가가 있었다.
“미꾸라지가 하늘로 올라가면 용이 된당가?”
그리고 정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밥이 이미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알사탕을 가지고 입에 넣고 밥을 먹기 전에 오물오물 굴려 가면서 사탕을 빨아 먹었다.
정자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정자에게 알사탕을 사주신 할머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정자 편 이였다.

“정자야! 너 엄만테 가서 좀 있다 올래? 장에 갔더니 옆에 강자 엄마가 광주 간다드라.
그래서 너좀 델고 가라고 했다.”
“근디 올 때는 누가 델고 온디?” 벌써부터 누가 데려올지가 걱정이었다.
“가 있으믄, 장날에 언제 오면 되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자는, 항상 엄마한테 갈 때마다 쌋던 보자기를 들고
나와서 옷을 쌌다.

“야야! 입을 것만 싸야지, 그리 많이 싸문 되냐?”
그럼 얼마 못 있고 온다는 거구나....... 정자는 속으로 생각을하고 할머니가 주는데로
보따리를 쌋다.
어린 고사리손으로 보따리를 늘상 묶고 풀고 하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시리기도 했다.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은 기뻤지만, 할머니가 외롭지 않을까 싶어 슬펐다.
덥고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지만, 소나기도 잠시 내렸다. 엄마를 본다는 생각에
짧은 여름밤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뒤척이는 내내 머리맡의 보자기를 연신 쳐다봤다.
다음날 아침 강자 엄마는 문밖에서부터 재촉을 했다.
“언능 가자 정자야..... 그래야 차 시간이 안늦은께로!”
정자는 말 떨어지기가 바쁘게 쌋던 보자기를 안고 나왔다.
“어메! 엄마 보러간께 존갑다잉.”
강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며칠 있는가?”
“딸 집에 얼마나 있겄는가!
한 사나 을 될 것도 같네!”
“그때 데리고 오믄 쓰겄네!”
그말 들은 순간 ‘길어야 이틀이구나!’ 하고 정자는 속으로 알아차렸다.
정자는 질끈 묶은 보자기를 들고, 달랑달랑 강자 엄마를 따라갔다.
그토록 보고 싶은 엄마였는데 낯설기만 했다. 올 때의 설렘은 어디로 가고 쑥쓰러웠다.
전자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큰딸 집에 왔다가 정자 엄마한테 좀 델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왔네!
지도 엄마가 보고 싶을 것인디, 어린 것이 할매는 할매고 엄마 품이 좋제잉!”
“애쓰셧어요..... ”
하고 엄마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정자는 방으로 들어와서 쌋던 보자기를 풀었다.

“이거 한번 입어봐라”
엄마는 미안하다는 듯 옷을 언제 사놓았던지 장롱에서 새 옷을 꺼내서 입혀주었다.
정자에게는 세 살 터울인 동생이 둘이 있었다. 같이 못 놀았던 동생들하고 놀아주면서, 가족이라는 것을 느낄 때쯤 정자는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이 생각났다.
정자는 자기가 없으면 슬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배신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있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정자는 보자기를 조용히 풀고 엄마가 사준 머리핀, 옷 등을 보자기에 넣어서
묶는 듯 마는 듯했다. 어김없이 강자 엄마는 이틀 뒤 방문을 했다.

“정자야! 너 시골 갈거냐? 엄마랑 같이 더 있다 올래?” 강자 엄마가 살피듯 쳐다봤다.
“좀 더 있다 가거라...... 맛난 것도 먹고 놀이동산도 가고.....”
정자는 엄마의 말에 그래도 우리 엄마가 나를 무척 사랑하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머물자니 할머니가 슬플 것 같고, 가자니 엄마가 슬플 것 같고......
정자는 혼란스러웠다.

“갈꺼냐?”
강자 엄마는 또 물었다. 지금 말 안 하면 가버릴 것이고,
“갈라요!”
정자는 곧바로 옆에 있는 반쯤 싸다만 보자기를 다시 꽉 쌌다.
“와따메! 할머니가 그리 벌써 보고 싶더나?” 강자 엄마는 놀리기라도 하듯 웃고 있었다.
정자는 속으로 말했다.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이미 고사리 같은 손으로는 묶다만 보자기를 다시 야무지게 꽉 묶고 있었다.
일곱 살 정자는 혼돈의 보자기를 풀었다 묶었다 하는 세월 속에서 성숙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된 정자는 지금도 성숙하고 아름다운 생각의 보따리로 거듭나기 위해서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화부 공서화 기자 dbskjtv@kakao.com        문화부 공서화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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