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일으키는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울림의 파고만큼 사회‧문화적 공감대가 비약적이다.
거기에 현상을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주는가하면, 이해를 통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끈한 매개역할, 영화가 지닌 매력이다.
2018년 새해벽두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영화 <1987>이 그렇다.
지난 30년 전 민주화 헌법사회 분수령인 1987년이 배경이다. 개봉과 동시에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13일 만에 500만명 돌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현장에서 활동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주의 인사는 물론 계층을 막론한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새겼다.
30년 전 1987년이 그랬던 것처럼 2017년 촛불혁명이 새 정부를 출범시키며, 미완의 민주주의를 가슴으로 보듬었다.
<1987>이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참살이가 시작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응집‧공동체를 통한 완전체로의 탄생일 수 있을게다.
하나가 되었을 때 무한한 힘을 발산하는 대.한.민.국을 끄집어내는 것.
<1987>은 시민혁명이라 불리는 ‘6월 민주항쟁’이 있기까지 6개월을 정면으로 다루며 당시 상황을 담아냈다.
시작은 1987년 1월 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국민을 기만하는데 서슴없었던 남영동(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사무실‧조사실)의 만행이 영화의 출발선이다.
세상을 입맛대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본질과 민낯이 현실감 넘치게 드러난다.
권력의 최상위 포식자들을 위한 만찬용 ‘먹잇감’을 준비하는 부역자로서 이들의 존재는 거북함을 넘어선 두려움이 스멀거린다.
무엇보다 고문치사 은폐를 진두지휘하는 박 처장(김윤석)의 완벽한 캐릭터 싱크로율에서는 무언의 ‘공포’마저 감돈다.
실존 인물인 박처원 전 치안감의 실제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배우 김윤석의 메소드 연기는 혼연일체의 작심이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남영동’에 대한 재해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들의 잔혹성은 <남영동 1985>에서 면면히 드러났다.
故 김근태 의원의 고문 수기를 바탕으로 한 <남영동 1985>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반인권적 고문기술을 여과 없이 묘사했다.
그 근간은 고문에 의한 피해자와 피의자 관계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한 생명을 처참히 농락할 수 있는 권리는 또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남영동, 이제는 하나의 시대적 ‘소재’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1987>과 <남영동 1985>가 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현실적인 역사’로만 치부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은, 불과 몇 해 전까지 이어졌던 권력기관의 폐단과 비상식의 역설적인 행태들에서 명백한 명분을 찾을 수 있다.
모습을 달리하며 연명하고 있는 그들의 반인권적 권력남용에 여전히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건 늘 ‘국민’이기에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1987>은 남영동의 정치적․선동적 역할을 비롯해 독재정권에 충신을 자처한 그들만의 ‘충정’에 반해 세상을 향한 ‘정의’를 대치시킨다.
현대물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검사와 기자가 소위 ‘권력지향형’도, ‘기레기’도 아닌 ‘진실’을 좇는 전문인이라는 낯섦이 ‘희망’과 연결되고 있다.
영화에서 최 공안부장(하정우)은 당시 최환 서울지검 공안2부장검사로 시신보존을 고수하며, 부검을 지휘해 은폐될 뻔했던 고문치사의 참상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역할이다.
실제 최환 검사는 영화에서 비쳐진 것처럼 술을 즐기거나 다혈질의 성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최 검사에게 한 국민을, 한 가정을, 그리고 한 국가를 대하는 우리네 일반적인 정서를 투영시키려는 장준환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그곳에 미친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현장감 있게 다룬 시퀀스는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탐사보도에 정론직필을 실천한 당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를 캐릭터화 한 윤 기자(박희준)가 내뿜은 기자정신은 감정을 확장시킨다.
세월호, 국정논단을 집중보도하고 책임감 있는 언론정신을 보여준 지금의 몇몇 언론이 교차되며, 언론 고유의 역할에 진심어린 박수가 나온다.
<1987>이 달아오르는 이유, 지난 30년 전 오늘과 지금 오늘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국민공동체는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힘에 있다.
<1987>은 6월 민주항쟁과 이한열 등 소재의 필요성은 물론 영화적 볼거리에도 제 몫을 다했다,
강동원, 고창석, 김윤석, 김의성, 문성근, 박희순, 설경구, 오달수, 여진구, 유해진 등 충무로 별들이 주․조연과 단역 등에 등장하며 영화에 무게를 더했다. 촬영 시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횡행하던 시기였음에도 이들 배우들이 보여준 소신은 관객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했다.
1987년 6‧29민주화선언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의 뿌리가 활착했다.
꽃다운 청년들의 안타까운 ‘희생’과 시민들의 결기가 있었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서 한 시대가 머금은 간절함은 다가올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역설했다. 시대적 아픔과 고통의 깊이만큼 세상은 진화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 근원에는 일반적인 해석이 가능한 ‘참된 삶’이 중심이다. 참살이를 위해 ‘보통 살이’를 포기하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는 신념은 생명보다 먼저였음을.
민주화를 위한 외침, 제도와 삶의 변혁을 위한 절규이다.
정반합을 통해 세상과 사람이 바르게 서는 것, 이라는 명제를 관통한 역사적인 경외이다.
때문에 현재는 과거를 돌아보고, 되짚어봄으로써 기민한 교정을 통해 모습을 갖춰가야 한다.
시대적 사건과 사람을 해석하고, 현재 시각에서 당시의 오늘을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 않아야 한다.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유기고가 최종호 dbsk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