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흘렀다. 304명이 영문도 모른 체 수장(水葬)된 인재. 대형 참사를 맥없이 관망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은 가슴 한 구석이 여전히 휑하다. 아직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아픔의 기한은 막연하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행위로 끝나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 <생일>은 그날의 참사를 잊기 않기 위한 하나의 기재이다. 그간 <다이빙벨>, <그날, 바다>가 취했던 정공법의 다큐와는 결이 다른 후마니타스적인 접근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담담이 쓰다듬는 ‘치유’가 중심이다. 영화는 당시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수호(윤찬영)를 추억하며, 엄마 순남(전도연)과 아빠 정일(설경구), 동생 예솔(김보민), 주변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과하지 않게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팩션이 아닌 논픽션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의 무게를 소소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정일이 안고 있는 심로의 정도는 가늠하기 힘들다. 정일의 동생 정숙(이봉련)이 “그런 일 겪고 아무렇지 않으면 더 이상한 거 아니야”라는 비수 섞인 말을 건네도 정일은 흔들림이 없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작위적으로 비쳐진다. 이미 주변인들은 고통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기에 본인의 슬픔은 ‘따위’ 쯤으로 묻어 버린 것. 그도 그럴 것이 수호가 없는 수호의 방에서 그는 갈마드는 슬픔과 회한에도 감정을 억제한다. 영화 도입부에 무덤덤하게 창밖만 바라보는 정일, 암시와도 같다.
정일의 빈자리로 버거운 현실을 감당해야 했던 순남은 5년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4월 16일 마지막으로 나눈 수호와의 문자, 그리고 받지 못한 수호의 전화. 순남은 ‘순간을 놓쳐버린 순간’을 자책하며, 당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오히려 수호를 떠나보낼 수 없음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됨을 자신만의 영역에서 지켜가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순남은 세상과의 단절을 밟아가고, 예솔에게는 모진 엄마를 자초한다. 오열하는 순남은 더 이상 위로의 대상이 아닌 불편한 한 명의 이웃으로 비쳐진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실제로 순남의 주변인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아이러니다.
영화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보상금에 대한 부분도 빼놓지 않는다. 암 투병으로 인해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보험금. 순남이 일하는 마트 동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보험금의 가치. 그리고 정일의 작은아버지(정종준)가 권하는 투자 용도의 보험금.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해석은 여러 갈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가계소득 창출 측면의 경제 관념적 접근은 슬픔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일이 격하게 거부한 보험금은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이 비단 돈으로 대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있다.
영화는 영화 같지 않은 일상을 연출해 몰입을 높인다. <밀양>, <시> 등에서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로 활동했던 이종언 감독은 ‘이창동스럽지만, 이종언다운’ 섬세함을 표현한다. ‘큰 쇠문을 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영화 <수퍼맨이 된 사나이> 중)’가 될 수 있듯, 어쩌면 영화에서는 세심한 연출력이 관객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일 것이다.
주인공이 없는 생일에 중심이 되는 건 수호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생일에 초대된 한 명 한 명의 회억이 수호를 그려낸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수호와의 비밀 같은 이야기는 남겨진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4월 16일 오전의 순남과 수호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 여자 친구 은빈(권소현)은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에 반 보 내딛는다.
영화 초반부터 꽉 찬 슬픔으로 덤덤하게 현실에 부딪힌 정일은 끝내 감정의 선을 넘는다. 정일이 토해내는 극한의 슬픔은 아직 남겨진 자들의 아픔임을, 정일을 다독이는 순남의 희미한 손은 아직 우리가 이들에게 건네야 할 위로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기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영화는 진심을 다해 말을 전하고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

최종호 자유기고가 moon2010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