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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끝에서 새로움이 움트다.

영화 '조커'
2019. 11.15(금) 10:12

최종호 자유기고가
인간에게 양면성은 숙명과도 같다. ‘나 같은 나’ 혹은 ‘나 같지 않은 나’를 교차하며,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행위에서 비켜날 수 없다.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나 다운 나’를 알아가는, 만들어가는, 지독한 고행이다. 그 과정에서 답을 구하기 위해 이유와 명분을 대입시키기도 한다. 철학적인 페르소나를 앞세워 당위성을 적용한다. 자기애를 위시한 방어적 본능이 작용한 것일 터.
영화 <조커>가 이러한 인간의 난행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한 인간의 양면성을 처연하게 묘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양면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저마다 지닌 양면성에는 원인이 있고, 이유가 따른다. 다만, 그런 양면성이 사회적 용인에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게 적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조커의 양면성에는 “사람이니까, 나약한 인간이니까”라는 이해가 스멀거린다. 그 속에는 아동학대와 결핍, 소외계층, 사회통념에서 바라보는 편견 등이 거머리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조커의 ‘웃는 병’은 어쩌면 이러한 세상에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자조하는 슬픔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난 일을 복기하고, 후회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다른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커>의 아서 플랙(호아킨 피닉스)은 그동안 봐왔던 ‘조커’와는 결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뻔한 악당이 아닌 우리 주변의 ‘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은 그로테스크한 모습과 연기를 선보여 당시 ‘최고의 악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말 그대로 ‘악(惡)’에만 집중된 인물이었다. 1960년대 조커의 시작을 알린 시저 로메로가 조커의 캐릭터화에 성공했다면, 잭 니콜슨은 조커를 악당의 반열에 등극 시킨 공신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니 말이다. 하지만 2008년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의 등장은 영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악당이 아닌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악마’적인 조커의 탄생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치 악마를 의인화시킨 듯 히스 레저의 조커는 영화 프레임을 꽉 채우며, 배트맨을 압도하기까지 했던 것.
그동안 조커를 악당, 악마적인 아이콘으로서 극악함을 표현했다면, 이번 <조커>의 아서 플랙은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과 이유를 설명한다. 연약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조커를 웃음과 몸짓, 망상으로 이야기 한다, 조커가 지닌 삶의 무게와 아픔, 그리고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상실감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지가 영화 전체에 흐른다. 토마스 웨인에 대한 아서의 어머니 페니 플랙의 사랑이 조현병에서 비롯됨과 아서의 사랑이 망상의 결과라는 것은, 그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우는 환경적 잔인함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잔혹한 건 이러한 삶의 형태가 ‘논픽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커를 짓누르는 혹독한 현실이 그를, 한 인간을, 나아가 특정 부류를 훗날 악마적 양면성을 발현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러한 <조커>의 아서 플랙은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의 조와 겹친다. 아동학대의 피해로 인해 피폐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은 우연히 아닌 사회적 고발과도 같다. 두 영화의 주인공으로 열연한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살인청부업자로서가 아닌 상처 받는 것에 지친,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싶은 간절함을 스크린 밖으로 절규하는 듯하다. 두 영화가 지닌 플롯의 줄기는 같다. 조가 매일 자살을 예행연습 하는 살인청부업자인 반면, 아서는 늘 웃고 있는 조커처럼 웃는 병을 앓는 정신 병력자로 한 인간의 연약함을 이야기한다.
<조커>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끝에서의 시작’처럼 인간의 양면성에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했을 때 표출될 수 있는 분노의 정점일까? 그런 분노에 동요되는 우리에게 국가가 사회가 취해야 할 몫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안에 스멀스멀 커지고 있는 조커와 조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무엇’을 말이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단지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신과 함께: 인과 연> 속 대사가 가슴에서 되내어진다.
자유기고가 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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