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탈권위의 시대에 교사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뜬금없기도 하고, 시대착오적이고, 꼰대 같은 소리 한다고 할 것 같다. 교실 속 교사의 지위와 역할도 변해왔다. 6,70년대에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상징되는 무섭고, 권위적인 교사의 모습이 있었다. 이때의 교사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스승 상 그 자체였다. 학생들 앞에서는 어떤 오류나 나태함도 보이지 않으려 했고, 완벽한 지식과 전통의 가치를 전수하는 권위의 상징이었고,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고, 학생들은 오직 복종의 미덕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무지한 체벌은 최고의 교습법이었고, 학생들의 미래는 선생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부모는 전적으로 학교를 신뢰했고, 선생님의 말씀은 자식의 미래를 책임지는 자양분이었다.

시대가 흘러 지금 선생님의 모습은 어떤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성희롱을 당하며, 학부모의 민원에 노심초사한다. 학생들의 조그마한 성의도 경계하며, 학부모의 호의를 ‘오리 물 털 듯’이 한다. 교장의 절대 권위는 사라지고, 싫은 소리라도 할 요량이면, 법이나 공문 구석의 근거라도 찾아야 소위 말빨(?)을 세울 수 있다. 가르침의 중심에 있던 교사는 교수자에서 안내자로, 안내자에서 촉발자로, 촉발자에서 도우미로, 도우미에서 보호자로, 보호자에서 사이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조금만 목에 힘을 주어도 꼰대 소리를 듣는 후배 앞에 소명 의식 같은 것은 개(?)나 줄 일이다. 학생을 혼내는 것은 학생 인권침해이고, 교사에게 대드는 것은 교권 침해이다. 모두가 적당히 민주적이고, 적당히 소통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교육하고 있다. 아직도 학생들을 가르치려 드느냐고, 제법 진보적인 후배가 내민 팸플릿의 제목은 ‘배움을 돕는 교사’이다. 교사의 화려(?)했던 과거의 권위 상실을 한탄하는 이도, 소통하는 교사상을 부르짖는 이도, 이 시대 진정한 교사의 권위는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대정신이 늘 계승과 혁신을 품고 있듯이, 교육의 본질 또한,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줄탁동시(啄同時)의 상호작용을 벗어날 수 없다. 학생은 자발적인 배움을 내면화하고, 교사는 가르침의 권위를 통해 비로소 출발선에 선다. 진보 교육 11년은 교사의 잘못된 권위를 허물며, 소통과 민주적인 소양의 미덕을 내면화할 것을 강요(?)했지만, 과거의 미덕을 함께 파묻는 우를 범했을 수도 있다. 교사의 권위는 필요하지만, 그 권위가 형식적인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존중에서부터 나온다는 언명은, 늘 입바른 소리라는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진보교육은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단절하는 아픈 시간이었다. 혁신학교는 지금도 자유로운(?) 학교라는 근거 없는 의혹을 받으면서도, 교육과정 중심의, 존중과 소통의 학교문화혁신을 이루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머지않아 혁신학교의 힘으로 두꺼운 입시경쟁구조의 껍질에 금을 내고 말 것이다. 교사의 권위를 내려놓으면서 함께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것들 속에는 우리가 다시 길어 올려야 할 무겁고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시대가 주는 책임감이다. 그 속에는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한 생의 가능성을 정당화 하려는 수고로움이 있고, 시대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목도하고 있는 인생 선배로서의 지혜가 있다. 교사권위의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권위 그 자체를 포기하고도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교육행위를 부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양산초등학교 교감 이재남